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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삼국지 - 가후 문화(賈珝 文和), 중화사상에 희생된 서량인

게임 삼국지 Ⅸ의 가후

게임 삼국지 Ⅸ의 가후



가후(賈珝)는 강(羌)족 땅에 가까운 무위군(武威郡) 고장현(姑臧縣) 사람으로 자는 문화(文和)이고 147년에 태어나 223년에 죽은 조조군의 참모이다.

가후는 본래 우보의 책사였다. 그 후에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 당하자 가후는 이각의 참모가 되어 장안을 칠것을 주장한다. 또한 마등군을 지구전으로 격파했으며 장안 복구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이각과 곽사가 대립하자 가후는 헌제를 안심시키고자 이각과 곽사를 공멸시키는 비책을 써서 대립을 심화시켰다, 그 뒤에 이각의 눈밖에 난 가후는 장제가 머무르고 있던 완성으로 도망친다.

그 후 197년 조조가 장수를 공격할 때 가후는 장수에게 항복을 제안했다. 하지만 조조는 장수의 숙모를 범하고 장수가 이에 분노하자 가후는 전위를 술에 취하게 한 뒤에 기습공격을 하여 조조군을 무찌른다.

198년 조조가 완성으로 쳐들어 올때 가후는 신묘한 책략으로 조조군을 당황시키게 하였고 그 때를 노려 추격하다 패배한 장수에게 '조조군은 후위가 약하니 한번 더 공격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라는 진언을 올리고 유표를 끌어들여 조조군을 크게 격파했다.

그 뒤 장수와 함께 조조한테 항복한 가후는 관도대전때 고람, 장합으로부터 조조군의 본진을 지키고 위수 전투에서 한수와 마초를 이간질시켜 마초군을 패주시켜 조조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활약을 하였고 조조가 후계문제로 갈등할때 원소와 유표의 예를 들어 조비를 다음 후계자에 올리도록 공헌을 하였고 조비가 즉위하자 태위가 되었다.

그 뒤에 조비가 섣불리 촉을 공격하려고 하자 가후는 2번씩이나 만류했지만 조비는 공격을 감행 그리고 위군은 2번 모두 패한다. 그리고 가후는 223년에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가후는 삼국지 연의에서 중화사상에 의한 영향으로 많이 비하되게 된다. 실제로 가후가 태어났던 무위는 강(羌)족과 가까운 땅으로 옛부터 이민족이 많았다고 하는데 가후는 아마도 이민족 출신이거나 혼혈이기 때문에 정통 중국인들한테 천대를 받았을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행한 일들을 나열하자면 삼국지에 버금가는 분량에 달할것이다.

중화사상에 희생된 서량인 가후...

그는 어쩌면 조조 진영의 최고의 책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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