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 TALK TALK!/○○⑦ 역사TALK

[인물] 삼국지 - 유선(劉禪)은 현군(賢君)이었다(?)

게임 삼국지 Ⅸ의 유선

유선 그는 아두인가? 아니면 현군인가?


유선.. 보통 삼국지에서 최악의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 이유는 유비,관우,장비,제갈양 등의 인물들이 힘들게 세운 촉을 패망의 길로 이끈 주범으로 지목되기 때문이지요. 아래 글은 '삼국지 해제'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유선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있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

(삼국지 해제 발췌)

유선(207~271)은 촉한의 2대 황제이다. 자는 공사(公嗣). 어릴 때 자는 아두(阿斗)이며 유비의 아들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 동탁, 조조, 여포, 다음으로 가장 혹평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유선의 실체를 분석해보면 나관중의 결론과는 완전히 다르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유선에 대하여 그 허물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막 제위를 계승했을 때는 범용한 군주였다. 둘째, 제갈량이 죽은 후 환관 황호를 총애하고 주색에 빠져 조정의 정치가 나날이 부패해갔다. 셋째, 위나라의 대장 등애가 성도로 진격해왔을 때 위나라에 항복하고 안락공에 봉해졌다. 넷째, 사마소가 연회를 열고 촉 출신의 사람들에게 촉나라 음악을 연주하게 하니 모두 눈물을 흘렸는데 유선은 태연히 촉의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상이 유선의 대표적인 허물들이다. 그러나 촉 황제 유선에 대해서는 좀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유선이 범용하다는 것도 납득하기는 어렵다. 유선은 성품이 부드럽고 그의 느역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 인상을 준 듯하다. 제갈량의 말을 빌리면, 유선은 "천성적으로 인애(人愛)가 있으셔서 아랫사람을 소중이 다룬다"고 하였다. 유선은 성격이 원만하고 무리하지 않으며 무슨 말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편안한 인상을 주는 것이 마치 유비와 비슷하다. 경우에 따라서 제나라의 성군이었던 환공에 비기기도 한다. 촉한의 소열황제 유비가 죽은 이후 유선이 황제의 자리에 있던 41년 동안 촉에는 정변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위나라 조정이나 오나라 조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둘째, 흔히 지적되는 것으로 촉 황제 유선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주색잡기에 빠져 있고 환관황호가 정권을 좌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이나 강유가 유선의 재가 없이 군대를 움직인 적은 없다. 그러나 군주들 가운데 유선만이 주색잡기에 몰두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른 군주들이 더 심했다는 것이 정사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유선만큼 현명한 신하와 재상들을 거느린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제갈량을 비롯 장완, 비의, 동윤 등이 대표 적인 예일 것이다. 사실 제갈량의 생전에 중국 정벌의 기치가 드높았으나 강유의 지속적인 패전 이후로 유선은 위나라의 정벌을 무모한 전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선의 입장에서는 위나라와 일방적인 전쟁의 과정에서 오나라에게만 어부지리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셋째, 결사항전도 없이 위나라에 항복하고 안락공에 봉해진 문제이다. 이 점도 당시의 사정을 분석한다면 얼토당토 않은 논리이다. 현실적으로 당시 촉은 전쟁에 너무 지쳐 있었다. 한실 부흥이라는 명분으로 그 많은 세월을 버텨왔는데 더 이상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유선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당장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마 그의 마음 속에는 한실 부흥이라는 명분을 포기한 지가 오래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유선이 위군의 공격에 대하여 무리하게 끝까지 항전하려 한다면 위나라 대군을 이기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모두 '개죽음'으로 몰고갈 상황이었다. 유선은 무슨 일이든지 억지로 추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왕은 '촉기'에서 "나라를 온전히 지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평하면서 유선은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왕이라고 적고 있다.

세상에는 인간이 거스르기 힘든 대세가 있는 법이다. 고래로 하늘의 뜻을 따라는 자는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였다.촉은 건국 후 40여년 동안 전쟁만 해왔고 상대는 촉이 정벌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나라였다. 민심은 지속적이로 이반되고 위군의 침입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서 결사항전을 하여 백성들과 군인들을 모두 죽이는 것은 폭군이나 할 짓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이나 욕망을 보전하는 데 급급하는 것보다 더 잘못된 일은 없을 것이다. 천하의 대세에 순응하는 것도 중요한 인생의 덕목이다. 특히 군주는 제일 먼저 천하의 안정과 백성의 안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부질없이 싸워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기보다는 어차피 이길 수 없고 함락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투항하는 것인데, 그것을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될 일이다.

넷째, 사마소가 연회를 열고 촉나라 음악을 연주하게 하니 모두 눈물을 흘렸는데 유선은 태연히 촉의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 문제이다. 이 점도 분석이 옳지 못하다. 사마소는 촉의 황제 유선을 크게 환대하여 안락공에 봉하였다. 사마소는 유선이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주택, 일상용품, 비단 1만 필, 노비 100여 명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유선을 따라온 유선의 아들 유요와 신하 번건, 초주, 극정 등에게도 각각 작위를 내렸다. 사마소는 대학자로 이름이 높고 촉이 투항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던 초주를 양성정후에 봉했다.

사마소가 유선을 불러서 속내를 떠보기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을 때 유선이 얼굴에 아무런 표정 없이 과거 촉의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사실은 정답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조조가 유비를 떠보기 위해 같이 술을 마시면서 용의 이야기를 했을 때 천둥이 치자 유비가 깜짝 놀란 흉내를 내어 위기를 모면했던 상황가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위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촉의 부흥운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강유가 등애와 종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위군을 자중지란에 빠지게 한 사건이 분명히 유선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유선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 최선을 다하여 천하의 대권을 두고 싸웠고 이제는 패배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명하게 지는 것도 대장부의 중요한 덕목이다. 당시 촉은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고, 중원에 다시 흡수되는 과정에서 양측이 천하의 대권을 두고 싸우다가 패배했기 때문에 승복하면 그만이지 오직 자신만이 천하통일에 명분이 있다고 고집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일이었을 것이다.

이상의 소론으로 볼 때 나관중의 '삼국지'는 유선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가 결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유선은 한마디로 현군(賢君)이었다.

-----------------------------
ⓞpen2ⓦorld™ ⓗome
http://open2world.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