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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삼국지 - 정사 "공손찬전"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22:10

중국영화 삼국지의 공손찬

중국영화 삼국지의 공손찬


연의에서는 어느정도 양호하게 묘사되는 인물이나 정사에서는 평할 가치도 없는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도 나름대로 매력있는 인물.. 백마장사라고도 불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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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전(公孫瓚傳)

공손찬은 자가 백규(伯珪)이다. 요서군(遼西郡) 영지현(令支縣) 사람으로, 요서 군현 문하의 서좌(書佐)에 임명되었다. 그는 용모가 당당하고 큰 목소리를 가졌으므로, 유태수는 그가 빼어난 인재임을 알아보고 자기 딸을 그의 아내로 삼도록 하고, 탁군 사람 노식(盧植)에게 보내어 경전을 배우도록 했다. 나중에 공손찬은 또 군의 낮은 벼슬아치가 되었다. 유태수(유기)가 법령을 어겨 정위로 불려갈 때, 법률에는 아랫사람이 가까이 가는 것을 금했지만, 공손찬은 수레몰이가 되어 스스로 고된 일을 맡았다. 유태수가 일남군(日南郡)으로 귀향갔을 때, 공손찬은 쌀과 고기를 준비해서 북망산(北芒山)에 올라가 선조들에게 제사지냈는데, 그는 술잔을 들어 축원하며 말했다.

"옛날에 저는 다른 사람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었으니 마땅히 일남군으로 가야 합니다. 일남군에는 독기가 가득하여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기에, 이곳에서 선조들에게 이별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는 두 번 절하고 감정이 격앙되어 일어나니, 이 때 그의 행동을 본 사람들은 모두 찬탄하였다. 유태수는 가는 도중에 사면되어 돌아왔다. 공손찬은 효렴으로 추천되고 랑이 되었으며, 요동속국(遼東屬國:유주에 속하며 여섯 개의 성을 관한함)의 장사(長史:부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일찍이 수십 명의 기병을 이끌고 요새를 순시하러 갔다가 수백 명의 선비족 기병을 발견하였는데, 사람들이 없는 마을로 물러나 부하 기병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들이 이들을 뚫고 나가지 못한다면 모두 죽을 것이다."

공손찬은 직접 창을 잡고, 그 양쪽의 칼날을 날카롭게 하여 말을 달려, 선비족 기병들을 찔러 몇 십 명을 죽이거나 부상입혔다. 그의 부하 기병 또한 절반이 목숨을 잃었지만, 결국 몸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선비족은 타격을 입은 이후로 두 번 다시 국경을 넘어 침입하지 못했다. 공손찬은 탁현의 현령으로 영전되었다.

한나라 광화 연간에 양주의 도적이 봉기했을 때, 조정에서는 유주의 돌격 기병대 3천 명을 징발하였으며, 공손찬에게 도독의 권한을 주어 그들을 지휘하도록 했다. 군대가 계중까지 갔을 때, 어양 사람 장순(張純)이 요서군 오환족의 구력거(丘力居) 등을 꼬여 반란을 일으켜 귀중에서 약탈을 하고, 자칭 장군이라 하면서 관리와 백성들을 협박하고 우북평군과 요서군 속국의 여러 성을 공격하였는데, 모두 그들에게 잔혹하게 무너졌다. 공손찬은 수라의 부대를 인솔하여 장순 등을 추격해서 공을 세우고 기도위로 승진되었다. 속국 오환족의 탐지왕(貪至王)이 부족 사람들을 이끌고 공손찬에게 투항했다. 공손찬은 또 중랑장으로 승진하고 도정후에 봉해졌고, 진군하여 요동속국에 주둔하며 선비족과 5~6년 동안 서로 공방전을 벌였다. 구력거 등이 청주, 서주, 유주, 기주를 약탈하여 이 네 주는 피해를 입었지만, 공손찬은 막아낼 수 없었다.

종정관(宗正官)은 도덕과 인의를 갖춘 사람으로서 옛날 유주자사로 있으면서 그의 은혜와 신의를 널리 전하였으므로 오랑캐들조차도 그에게 복종하였으니, 만일 그에게 진압하고 달래도록 한다면 병사들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서 그 지역을 안정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정에서는 판단했다. 그래서 유우를 유주목으로 임명했다. 유우는 임용된 후 선비족에게 사람을 보내어 반역을 했을 경우의 이해관계를 설명하고, 장군의 머리를 보내도록 요구해했다. 구력거 등은 유우가 왔다는 말을 듣고 매우 즐거워했으며, 각각 통역을 하여 자발적으로 귀순을 요청했다. 공손찬은 유우의 공로를 질시하였으므로, 몰래 사람을 보내어 오랑캐의 사자를 죽이도록 했다. 선비족은 이 일을 알고 샛길로 달려와서 유우를 만났다. 유우는 상주하여 여러 곳의 주둔병을 철수시키고, 단지 공손찬이 이끄는 보병과 기병 1만 명만 남겨 우북평을 지키도록 했다. 장순은 처자식을 버리고 선비족 속으로 달려왔지만, 식객 왕정(王政)에게 살해되어 그의 머리가 유우에게 보내졌으며, 왕정은 열후에 봉해졌다. 유우는 공을 세웠으므로 태위에 임명되었고, 양분후(襄奮侯)에 봉해졌다. 이 때 마침, 동탁이 낙양으로 와서 유우를 대사마로 승진시키고, 공손찬을 분무장군으로 임명하고 계후로 봉했다.

관동지역에서 의군이 일어나자, 동탁은 황제를 협박하여 서쪽(장안)으로 수도를 옮기고, 유우를 불러 태부로 임명했지만, 길이 막혀서 이 명령이 전달될 수 없었다. 원소와 한복은 상의하여 황제가 간신들에게 제어당하고 있어 천하의 사람들은 마음을 귀의할 곳이 없는데, 유우는 황족으로 평판이 높고 인망이 있으니, 유우를 황제로 추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자를 보내 유우를 만났지만, 유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소 등은 유우에게 상서 일을 맡아(정치적 책임자가 된 것),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는 권한을 얻어 관직에 임명하도록 권유했지만, 유우는 승낙하지 않았으며, 원소 등과 우호관계만 유지했다.

유우의 아들 유화(劉和)는 시중이 되어 장안에 머물고 있었다. 천자는 동도(東都:낙양)으로 돌아오려는 생각으로 유화에게, 동탁에게서 거짓으로 도망쳐 몰래 무관(武關)에서 나와 유우를 찾아 군대를 이끌고 맞이하러 나오도록 명령했다. 유화는 원술의 영지를 지나게 되었으며, 원술에게 천자의 생각을 설명했다. 원술은 유우를 이용하여 견제하고 있었으므로 유화를 붙잡아 두고 출발시키지 않았으며, 유우의 군대가 도착한 후에 그와 함께 서쪽으로 갈 것을 승낙하고 유화로 하여금 유우에게 편지를 쓰도록 했다. 유우는 유화의 편지를 받고 수천 명의 기병을 그에게 보내 주었다. 공손찬은 원술이 두 마음을 갖고 있음을 알고 군대를 파견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유우가 군대를 일으키는 것을 제지하려 했으나 유우는 듣지 않았다. 공손찬은 이 점을 원술이 듣고서 원망할까 두려워하여 그의 사촌동생 공손월(公孫越)에게 기병 수천 명을 인솔하여 원술에게 가서 손을 잡게 하고, 비밀리에 원술을 시켜 유화를 잡아 그가 갖고 있던 군사 지휘권을 빼앗도록 했다. 이로부터 유우와 공손찬은 더욱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유화는 원술에게서 도망나와 북쪽을 향해 달렸으나, 또 다시 원소에게 잡혀 머물게 되었다.

이 때, 원술은 손견을 보내 양성에 주둔시켜 동탁에 대항하도록 하였고, 원소는 주앙(周昻)을 보내 그곳을 탈취하도록 하였다. 원술은 공손월과 손견을 보내 주앙을 공격하도록 했으나 승리하지 못했고, 공손월은 날아오는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으니, 공손찬은 격노하여 말했다.

"내 동생이 죽었으니, 이 재난은 원소로부터 시작되었다."

군대를 내보내 반하(磐河)에 주둔시키고 원소에게 복수할 준비를 했다. 원소는 두려웠으므로, 자기가 차고 있던 발해태수의 인수를 공손찬의 사촌 공손범(公孫范)에게 주고, 그를 발해군으로 보내어 공손찬과 우호관계를 맺으려 했다. 공손범은 발해 군대를 이끌고 공손찬을 도와 청주와 서주의 황건을 격파시키니, 군대는 더욱 강성해졌고 계교(界橋)까지 진군하였다. 그는 엄강(嚴綱)에게 기주를 다스리게 하고, 전해(田楷)에게 청주를 다스리게 했으며, 단경(單經)에게 연주를 다스리도록 하여 군이나 현의 장관을 임명했다. 원소는 광천(廣川)에 진을 치고, 대장 국의(麴義)를 앞쪽에 배치하여 공손찬과 싸우게 하였고 엄강을 사로잡았다. 공손찬은 발해에게 달아나 공손범(公孫範)과 함께 괵주로 돌아와 큰 성 동남쪽에 작은 성을 만들었는데, 유우가 있는 곳과 접근해 있었으므로 점차 서로 원한을 품고 바라보게 되었다.

유우는 공손찬이 난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군대를 움직여 공손찬을 공격했다. 그러나 유우는 공손찬에게 패하여 거용(居庸)으로 도주하였다. 공손찬은 거용을 공격하여 유우를 사로잡았으며, 그를 포로로 하여 괵주로 돌아왔다. 이 때 동탁이 죽었으며, 천자는 사자 단훈(段訓)을 보내어 유우의 식읍을 증가시키고 육주(六州)를 감독하도록 했고, 공손찬은 전장군으로 승진하고 역후(易侯)로 봉해졌다. 공손찬은 유우가 황제를 칭하려 했다고 무고하고, 단훈을 협박하여 유우를 참형에 처했다. 공손찬은 단훈을 추천하여 유주사자로 임명시켰다. 공손찬은 교만하고 방자하여 다른 사람의 잘못은 기억하지만, 장점은 잊어버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살해되었다. 유우의 종사 어양(漁陽) 사람 선우보(鮮于輔)와 제주(齊周) 기도위 선우은(鮮于銀) 등은 유주의 병사들을 이끌고 공손찬에게 복수하려고 하였는데, 연(燕)나라 사람 염유(閻柔)는 줄곧 은혜를 베풀고 신뢰를 쌓았으므로 모두들 염유를 오환족의 사마로 추대하였다. 염유는 오환족과 선비족을 끌어들이고, 이민족과 한나라 사람 총 수만 명의 군사를 얻어 공손찬이 배치시킨 어양태수 추단(鄒丹)과 노북(潞北)에서 접전을 벌여 그를 무찌르고 아울러 죽였다. 원소는 또 국의와 유우의 아들 유화에게 군사들을 지휘하게 하여 선우보와 합류시켜 공손찬을 공격하도록 했다. 공손찬은 몇 차례 싸움에서 지더니 역경(易經)으로 도망가 수비만 공고히 했다. 그는 열 겹의 참호를 파고, 참호 뒤로는 아주 높은 흙산을 쌓았는데, 높이는 대여섯 장이나 되며, 그 위에 누각을 만들었다. 참호 안 중심에 쌓은 흙산은 그 높이가 십 장(丈)에 이르며, 그 자신은 그 위에 머물렀고 그곳에 3백만 석의 곡물을 쌓아 놓고 있었다. 공손찬이 말했다.

"과거에 나는 천하의 일은 손가락으로 휘둘러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소. 병사들을 쉬게 하고 농사에 온 힘을 기울여 양식을 축적하는 것이 더 낫소. 병법에 백 겹의 누대는 공격할 수 없다고 하였소. 지금 나의 누대는 천 겹이고, 이곳 양식을 다먹으면 천하의 정세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오."

그는 이런 방법에 의지하여 원소가 지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소는 대장을 보내 공격했지만 , 몇 년이 되도록 함락시킬 수 없었다.

건안 4년(199)에 원소는 전군을 출동시켜 공손찬을 포위했다. 공손찬은 아들을 흑산적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하도록 하고, 자기는 집적 돌격 기병대를 이끌고 단숨에 포위망을 뚫고 나와 서남쪽의 산악지대를 따라 흑산의 병력을 거두어 기주를 공격하여 원소의 후원을 단절시키려고 생각했다. 장사 관정(關靖)이 공손찬을 설득하여 말했다.

"지금 장군의 장수와 병사들은 땅이 꺼지듯 완전히 와해되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집에 있는 부모와 자식을 걱정하고 장군을 주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장군이 장기간 지키고 있는다면, 원소는 장차 자발적으로 군대를 물릴 것입니다. 워소가 자진하여 군대를 물리고 나면, 사방의 무리들은 또 모일 것입니다. 만일 장군이 지금 이곳을 버리고 떠난다면, 군대는 지켜야만 되는 중요한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고, 역경은 순간적으로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장군이 본거지를 잃고 황야로 고독하게 떠돌면 또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공손찬은 출동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구원병이 도착한 후, 공손찬은 안팎에서 원소를 공격하려고 사람을 시켜 아들에게 펴니를 보내 날을 정하고, 군대가 도착하면 횃불을 들어 알리도록 했다. 원소의 염탐꾼이 그 편지를 손에 넣어 약속한 날에 횃불을 들었다. 공손찬은 구원병이 도착하였다고 생각하고 병사를 내보내어 싸움을 시작했다. 원소는 복병을 숨겨 놓고 공격을 하였으므로, 공손찬은 크게 패배하고 돌아와 수비를 굳게 했다. 원소는 땅 밑으로 길을 파서 돌격하여 누각을 무너뜨리고, 공손찬이 살고 있는 중앙의 흙산 가까이까지 갔다. 공손찬은 자신이 졌음을 알고, 처자식을 전부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우보가 그의 부하들을 데리고 천자의 명을 받들었으므로 천자는 그를 건충장군(建忠將軍)에 임명하고, 유주의 육군을 감독하도록 했다. 조조와 원소 등이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염유가 사자를 조조에게 보내 투항을 신청했으므로, 그를 호오환교위(護烏丸校慰)로 승진시켰다. 또 선우보가 직접 조조를 만나러 왔으므로 좌도요장군(左度遼將軍)으로 임명하고 정후로 봉하여 원래의 주(유주)로 돌아가 진무하도록 했다. 조조가 원담이 있는 남피를 격파하자, 염유는 부하와 선비족을 이끌고 와서 명마를 바치고 대군을 영접하였으며, 삼군의 오환족 요서군의 답돈(踏頓), 요동군의 소복연(蘇僕延), 우북평군(右北平郡)의 오연(吳延) 을 정벌하는데 참가하였으므로 그를 관내후에 봉했다. 선우보는 또 그의 부하들을 인솔하여 조조를 따라가 싸웠다. 위문제는 황제 자리에 있을 때, 선우보를 호아장군(虎牙將軍)에 임명하고, 염유를 도요장군(度遼將軍)에 임명하였으며, 모두 현후(縣侯)로 승진시켜 봉하고 특진의 자리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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