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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삼국지 - 당시의 고구려에 대해서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21:47

중국이 위,촉,오의 삼국으로 분열되어 있을 당시 한반도의 북쪽, 즉 만주에는 자랑스런 고구려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아래 글은 당시 고구려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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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중국이 나라가 어지럽든 평온하든 간에 중국인들 사이에 상당히 많이 애용되어 왔습니다.

그 이유중를 보면 삼국지의 위나라 무제(조조)는 북방으로는 이민족들이 감히 쳐들어 올 생각조차도 못하게 만들었죠, 특히 채염을 흉노족의 왕으로부터 구해온 이야기는 그만큼의 조조의 위력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꼭 그런건 아니지만, 중국이 이민족에게 위협을 받을때는 위나라를 중심으로 한 삼국지가 사랑을 받았죠.

나라가 평온할때는 정통성과 충효를 강조하는 분위기의 내용 즉 나관중이 쓴 촉나라 중심의 삼국지가 상당히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쁘게 보면 삼국지 역시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의 최대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저도 삼국지를 사랑하고 많이 읽고 감동을 받고는 있으나 차칫 우리나라의 역사를 무시할 수 있는 오류에 빠지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역사에서 삼국지와 관련이 많은 나라는 바로 고구려 입니다.

아마 우리민족이 세운국가중에서 가장 강력했었고, 그 정신이 조선이 개국될때 까지 이어져 옵니다.

소설상에는 등장하지 않고, 정사에 관구검에 의해 정복되어진 나라로만 등장하는 고구려...정말 중국인들의 말처럼 그렇게 허덥한 나라였을까요?

고구려는 중국에서 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동쪽에 사는 오랑캐라는 뜻인데요...그에 반해 고구려에서는 중국을 욕심많은 지나족이라고 불렀습니다. 고구려 중심에서 본 오랑캐를 지칭하는 말이죠.

자 하나하나 읇어보겠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단군조선의 개승의식이 아주 강한 나라 였습니다. 후한 광무제와 그 이후의 왕들과 끝없이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단군조선의 영토회복'이었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태조왕때 오면 단군조선의 영토를 거의 대부분 회복하지만 태조왕 사후 나라안의 불안으로 인해 결국 상당부분 상실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끝없이 투쟁이 계속되는 데요.

바로 동천왕과 관구검의 싸움입니다. 관구검은 처음에는 고구려군에게 당하지만 나중에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타서 교병지계를 멋지게 성공시켜 수도까지 함락을 시킵니다.

여기서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주장합니다. 뭐 일리는 있으나 계속해서 고구려 군대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고, 후방에서 게릴라 전을 펼쳐 위나라의 군대의 보급로를 차단해 버리는등 상당한 데미지를 입히고 물러나게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국난의 극복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내실을 다져 훗날 위나라의 울지해가 쳐들어오자 멋지게 방어해 냅니다.

즉 위나라와의 싸움에서 독자적인 자주성과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위나라 조차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한 후 울지해가 쳐들어오자 멋기게 격퇴해버리고 오히려 위나라 영토까지 치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천손의 자손의식이 상당히 강했는데요, 후한말 채옹(동탁의 시신을 안고 울다가 왕윤에게 죽임을 당함)이 쓴 사서를 보면 '천자라는 칭호는 동이에서 유래되었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즉, 천자라는 칭호는 우리민족이 쓰던 말이었던 것이죠.

여기까진 그냥 이야기고요, 확실한건 바로 다음입니다.

제갈양이 쓴 병법과 그외의 책을 보면 이민족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갈양의 것을 위주로 하되 종합해서 고구려에 대한 것을 여러분들께 어느정도 설명해 드리죠.. 적국과의 전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제법 사실적으로 구사한 것이니 충분히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동이(고구려)

동이는 산세가 험하고 성의 위치가 모두 높은 구릉지에 형성 되어 있다. 성마다 독립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지형자체가 천연방어선을 이루고 있다.

동이는 예와 충이 강한 민족이다. 왕은 어질고 백성은 강하며 윗사람을 깍듯이 섬길줄 안다. 특히 '맥'(고구려의 속국일듯)은 조세가 25분의 1이다. (그만큼 세율이 가볍다는 것은 귀족의 사치가 심하지 않고 백성도 풍족했다는 뜻) 산성이 여러개 떨어져 있고 한번 밀고 들어가더라도 다른 성의 군대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니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보급로를 차단당해 낭패를 본다.

게다가 백성들 역시 전시에는 단결을 잘해 함부로 이런민족을 함부로 도모하려 들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싶다.

정 이러한 민족을 도모하려거든 나라가 혼란해 지거든 첩자를 보내 어진신하를 제거하고, 백성과 왕 사이를 이간질 시켜라 그러면 쉽게 도모할 수 있을것이다.

원본 출처 : 공손홈 '안성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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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삼국의 관계

<출처: 역사부도>



위의 내용은 제갈양이 쓴 병법과 기타 자료를 종합한 것입니다. 위 내용의 경고대로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는 고구려를 치다가 보급로가 차단되어 크게 낭패를 보았는데요, 역시 고구려는 중국의 대국과 견주어서 절대로 밀릴 것이 없는 강력한 우리나라의 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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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손님 2011.08.07 15: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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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중 고구려가 가장 강했던 국가는 아니었죠 그 전의 고조선만해도 3600년간 지속됐던 강대국이었는데 중국에도 3600년동안 지속된 국가가 있습니까? 주나라가 은나라에 반란을 일으킬때 고조선에 도움을 요청하죠
동이가 동쪽의 오랑캐라는 뜻은 아닙니다. 음양오행등 상당한 문화가 동이에서 온건이라는 기록이 중국에 많은데 오랑캐라 부르진 않았겠죠
우리 역사에 관한것은 연구할것이 많지만 주제에서 벗어나기에 줄입니다.
중요한것은 고구려 이후에도 그쪽 사람들이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는것..
From. Favicon of http://open2world.tistory.com 푸른빛 Open2World 2011.08.07 19:05 신고
PERMALINKDELETE/MODIFY
고조선은 강대국으로 보기는 힘든게... 당시에는 국가의 중앙집권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대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부족 내지 연맹국가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동이'라는 표현은 결국 한족 중심의 중국인들이 만든 오랑캐를 일컫는 말은 맞습니다.
[논의] 제갈양은 왜 유비를 따라 나섰나?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21:39

삼국지 Ⅸ의 제갈양

삼국지 Ⅸ의 제갈양


본 내용은 연의에 입각한 글입니다. 삼국지를 읽었다면 꼭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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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최대 이벤트이자, 뛰어난 사람을 얻기위해 스스로 몸을 구부리는 유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일화가 있습니다. 바로 삼고초려입니다. 이 내용은 제갈양이 그의 출사표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비가 '미천한 자신을 찾아와줘서 그 은혜가 하늘과 같다'라고 표현하고 있죠.

비단 유비 뿐만 아니라 예부터 천하의 대인을 찾아갈때는 그가 비록 뛰어난 군주이더라도 스스로 찾아가서 몸을 굽히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주나라의 무왕이 태공망을 찾아갈때도 그러했죠. 또한 조조 역시 삼고초려를 했습니다.

특히 연의를 보면 제갈양은 유비가 천하를 통일할 운이 아님을 스스로 깨닫고 유비를 피하다 나중에 유비와 함께 나서면서 '나도 범증의 운명을 겪게 되는구나'하며 되뇌이는 부분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참조)

물론, 유비의 간곡한 청이 있었고, 유비 역시 천하의 기재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한실부흥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제갈양에게 고개를 숙여 가르침을 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제갈량이 뛰어난 천하의 기재가 왜 그때까지 초야에 묻혀 지냈을까요? 다시 말해서 가까운 형주의 유표나 오나라의 손책, 손권이 출사를 부탁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면 유비를 따라나가지 않더라도 하다못해 손권이라도 찾아갔으면 확실한 자리 하나를 마련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 제갈양이 출사보다 은둔 생활을 더 선호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연의에서 언급하듯이 자신의 대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군주를 기다렸던 것일까요?

여기서 조금 다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제갈량은 당시 추녀로 널리 알려진 황승언의 딸과 결혼을 합니다. 여기서 제갈량은 왜 세상에 추녀로 알려진 황승언의 딸과 결혼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합니다.

실상 황승언은 형주의 유지 집안이었습니다. 제갈양이 황승언의 박식함에 매료되어 결혼을 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아무 기반도 없이 능력만 좋은 제갈량이 출세하기 위한 인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황승언의 딸과 결혼을 했다는 추측이 더 일리가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제갈량이 은둔 생활을 출사보다 선호했거나 연의에서 처럼 대의를 실현시킬 군주를 기다렸다는 설명의 근거는 그 힘을 잃게 됩니다. 오히려 제갈량은 출사를 위해 어느정도 필사적이었다는 해석을 할 수 있죠. 물론, 이것 하나만 가지고 그렇게 단정짓기는 곤란합니다. 이에 대해서 소설 삼국지를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합시다.

제갈량이 세상에 출사할 뜻이 있었다는 사실은 소설 삼국지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 한가지는 바로 유비가 신야목으로 있을때 제갈양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유비를 찾아와 신야의 병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로 호구조사를 실시할 것을 알려주고 돌아가는 일화입니다. 훗날 유비는 직접 제갈양을 세번이나 찾아가서 호구조사를 실시할 것을 알려준 사람이 제갈량를 알아보고 그 때 그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탓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번째
는 제갈량이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견하고 다닌 사실입니다. 초야에 묻혀서 세상을 방관할 사람 같았으면 대게 천하대세를 논하는 것에서 그치거나 아니면 자신을 찾는 군주를 신나게 망신주고 도망치거나 아예 숨어버립니다. 즉 자신이 누구니 날 알아달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예형이 그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것입니다.

세 번째
는 연의에서 미화되긴 했지만 제갈양이 제법 뛰어난 군사적 지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후대 사람들 중 그의 군단 지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많기는 하나 수적으로 불리한 촉의 군대로 위나라의 대군을 상대로 밀고 들어가는 대담함과 치밀함 그리고 기산을 중심으로 한 그의 여러 전투에서의 지휘 능력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쓴 병법은 그가 평소에 병법연구에 관심이 많았다는 한 증거이며, 이는 나중에 출사하며 이를 쓰기위해 대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상에서 제가 연의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아마 제갈양은 은둔하기 보다는 벌써부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인물로 생각됩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갈량은 출사에 분명히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출사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천하의 기재였던 그가 왜 손권이나 유표를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역시 연의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손권과 유표는 그의 대의를 실현시켜 줄 수 있을만한 군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표는 이미 채씨 일족이 상당한 위력을 떨치고 있어 자기가 찾아가 봤자 그렇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손권 역시 삼강의 험준함과 함께 주유, 노숙, 장소 등 뛰어난 전략가와 지략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제갈량으로서도 상당한 고전을 해야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유비의 경우를 보면 무장은 충분하나 그들을 전략적으로 이끌수 있는 군사(軍師)가 없었으며 그다지 뛰어난 문관 역시 없었습니다. 사마휘의 평가대로 '백면서생'에 불과한 인물들이 다수였죠. 때문에 제갈양이 직접가면 치열한 노력없이도 그의 천하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유비군에서 상당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제갈양은 은둔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출사하기를 학수 고대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유비에게 임관하게 된 이유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유비 진형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데 있어 비교적 수월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원본 출처: 공손홈 '안성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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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삼국지 연의에 숨겨진 비밀.. 그 이면에는...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19:41

누구나 한번쯤은 삼국지를 읽어봤거나 접해봤을 겁니다. 서양에 아서왕의 전설 같은 훌륭한 소설들이 있다면,동양에는 삼국지가 있다고 할정도로 삼국지는 그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상당히 우수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삼국지를 처음 접한게 7살 쯤으로 기억합니다. 한때 삼국지에 빠져 연의는 물론 정사 삼국지까지 단숨에 독파하기도 했죠.책을 수십번은 읽어대던 생각이 나네요. 삼국지 게임을 접하면서 삼국지 중독(?)은 더 심해졌었죠. 예전처럼 중독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에도 심심치 않게 삼국지 관련 카페에서 활동을 합니다. 앞으로 올릴 글들은 대부분 제가 전에 카페 및 사이트 활동하면서 썼던 글들입니다. 주로 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해 본것들이죠. 삼국지를 조금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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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연의에 숨겨진 비밀.. 그 이면에는...

삼국지는 본래 진[晋]의 진수가 집필한것을 송[宋]의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 위지 30권, 촉지 15권, 오지 20권으로 65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그리고 나관중은 진수가 쓴 삼국지를 소설화 시켜 삼국지 연의를 펴냈다.

삼국지 연의를 읽다보면 소설화되었기 하지만 상당히 왜곡(?)된 면이 많다는 점을 발견할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중화주의로 인한 왜곡이다. 중화주의 사상에 대해 모르시는 분은 이 글 끝부분에 있는 백과사전에서 발췌한 글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중화주의 사상에 의한 왜곡으로 피해를 입은 그들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중화사상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가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쩌면 가후는 제갈양보다 뛰어난 지략가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후가 관여한 사건을 모으면 그것이 바로 삼국지가 될 정도로 가후는 중요 인물이었다. 또 가후는 조조가 원소를 이긴 관도대전 등 주요 전투마다 탁월한 전술을 내놓았었다. 이런 가후를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에서는 “천하의 지혜를 논하려고 하는 자는 가후에게로 온다”고 높은 평가를 했는데도,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면서 철저히 무시한 이유로 저자들은 가후의 출신배경을 든다. 가후는 강족, 흉노족의 고장인 서량지역 출신이라 중화주의 사관에 철저했던 나관중의 소설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편협적인 중화주의로 인한 왜곡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동탁, 여포 등이 역사적인 사실에 비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도 그들이 정통 한족이 아닌 변방인이기 때문이다,

중화주의로 인해 이득을 본 자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제갈양과 유비를 들겠다.

제갈량이 매년 위를 치기 위해 군대를 움직이면서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마 임기응변의 지략이 없었기 때문일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나관중은 유비 진영측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를 거의 신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나관중은 '유비에게 너무 많은 advantage를 준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가후를 생각해보자. 만약 나관중이 가후가 주군을 수없이 바꾸고 처세에 능한 이유로만 가후를 좋지 않게 묘사했다면 유비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후보다 처세에 더 능했으며 잔꾀가 많았다는 생각이다. 유비는 공손찬, 원소, 조조 이런식으로 여러 군주들을 의지 하였다. 잘 생각해보면 주군을 바꾼것과 다를것이 뭐가 있는가?


중화사상(中華思想) - 네이버 백과사전

예로부터 한족(漢族)이 품고 있는 자기 민족 중심의 사상이다. 중화의 배후에는 항상 이적(夷狄)이라 하여 이민족을 천시하는 관념이 있기 때문에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도 한다. 중(中)은 ‘중앙’이라는 뜻이며, 화(華)는 문화라는 뜻이다. 이 사상은 원래 유교의 왕도정치(王道政治) 이론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왕자의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유교에서는 왕자가 살고 있는 중국의 땅은 물론, 그 변경이나 새외(塞外)의 지역도 ‘왕화(王化)’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왕화’의 영향은 멀어질수록 희미해지지만, 중화문화가 미치지 않는 ‘화외(化外)’의 땅이라 하더라도 ‘왕화’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 중화문화의 세계라고 한다.

‘왕화’사상은 전국시대(戰國時代:BC 5∼BC 3세기)로부터 진(秦) ·한(漢)나라에 걸쳐 형성되었다. 당시의 군주는 문무(文武) 관료를 양성하였고, 내외에 대하여 형벌이나 무력으로써 권력을 강화하였으나, 유가(儒家)에 속하는 사상가들(孔子 ·孟子 ·荀子) 등은 군주의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중시하였다. 광활한 중국 땅에 안정된 정권을 확립한 한왕조(漢王朝)는 그들의 덕치주의(德治主義)의 ‘왕화’사상을 받아들였다. 그 뒤 청나라에 이르는 2000년 동안 황제정치체제 밑에서 유교 관료, 지식인층에 의해 정착되었다. 왕자의 덕을 중핵으로 하여 생각된 세계질서 속에서는 종족적 ·민족적 차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찍이 춘추시대(春秋時代:BC 8∼BC 5세기)까지는 융(戎) ·적(狄) ·만(蠻) ·이(夷)라 하여 중화세계로부터 차별과 배척을 받던 이민족도 ‘왕화’를 기준으로 하면, 중화세계 속에 포함된다. 그 대신 한족(漢族)의 문화양식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의 가치는 부정되고 만다. 외국에서 통상사절이 와서 ‘조공(朝貢)’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왕화’사상은 무한하게 퍼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관념이나 영토관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19세기 이후 이른바 열강이 비교적 용이하게 중국의 영토나 이권을 분할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측에 명확한 국경이나 영토관념이 없었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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