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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삼국지 연의에 숨겨진 비밀.. 그 이면에는...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19:41

누구나 한번쯤은 삼국지를 읽어봤거나 접해봤을 겁니다. 서양에 아서왕의 전설 같은 훌륭한 소설들이 있다면,동양에는 삼국지가 있다고 할정도로 삼국지는 그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상당히 우수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삼국지를 처음 접한게 7살 쯤으로 기억합니다. 한때 삼국지에 빠져 연의는 물론 정사 삼국지까지 단숨에 독파하기도 했죠.책을 수십번은 읽어대던 생각이 나네요. 삼국지 게임을 접하면서 삼국지 중독(?)은 더 심해졌었죠. 예전처럼 중독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에도 심심치 않게 삼국지 관련 카페에서 활동을 합니다. 앞으로 올릴 글들은 대부분 제가 전에 카페 및 사이트 활동하면서 썼던 글들입니다. 주로 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해 본것들이죠. 삼국지를 조금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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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연의에 숨겨진 비밀.. 그 이면에는...

삼국지는 본래 진[晋]의 진수가 집필한것을 송[宋]의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 위지 30권, 촉지 15권, 오지 20권으로 65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그리고 나관중은 진수가 쓴 삼국지를 소설화 시켜 삼국지 연의를 펴냈다.

삼국지 연의를 읽다보면 소설화되었기 하지만 상당히 왜곡(?)된 면이 많다는 점을 발견할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중화주의로 인한 왜곡이다. 중화주의 사상에 대해 모르시는 분은 이 글 끝부분에 있는 백과사전에서 발췌한 글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중화주의 사상에 의한 왜곡으로 피해를 입은 그들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중화사상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가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쩌면 가후는 제갈양보다 뛰어난 지략가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후가 관여한 사건을 모으면 그것이 바로 삼국지가 될 정도로 가후는 중요 인물이었다. 또 가후는 조조가 원소를 이긴 관도대전 등 주요 전투마다 탁월한 전술을 내놓았었다. 이런 가후를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에서는 “천하의 지혜를 논하려고 하는 자는 가후에게로 온다”고 높은 평가를 했는데도,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면서 철저히 무시한 이유로 저자들은 가후의 출신배경을 든다. 가후는 강족, 흉노족의 고장인 서량지역 출신이라 중화주의 사관에 철저했던 나관중의 소설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편협적인 중화주의로 인한 왜곡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동탁, 여포 등이 역사적인 사실에 비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도 그들이 정통 한족이 아닌 변방인이기 때문이다,

중화주의로 인해 이득을 본 자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제갈양과 유비를 들겠다.

제갈량이 매년 위를 치기 위해 군대를 움직이면서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마 임기응변의 지략이 없었기 때문일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나관중은 유비 진영측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를 거의 신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나관중은 '유비에게 너무 많은 advantage를 준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가후를 생각해보자. 만약 나관중이 가후가 주군을 수없이 바꾸고 처세에 능한 이유로만 가후를 좋지 않게 묘사했다면 유비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후보다 처세에 더 능했으며 잔꾀가 많았다는 생각이다. 유비는 공손찬, 원소, 조조 이런식으로 여러 군주들을 의지 하였다. 잘 생각해보면 주군을 바꾼것과 다를것이 뭐가 있는가?


중화사상(中華思想) - 네이버 백과사전

예로부터 한족(漢族)이 품고 있는 자기 민족 중심의 사상이다. 중화의 배후에는 항상 이적(夷狄)이라 하여 이민족을 천시하는 관념이 있기 때문에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도 한다. 중(中)은 ‘중앙’이라는 뜻이며, 화(華)는 문화라는 뜻이다. 이 사상은 원래 유교의 왕도정치(王道政治) 이론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왕자의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유교에서는 왕자가 살고 있는 중국의 땅은 물론, 그 변경이나 새외(塞外)의 지역도 ‘왕화(王化)’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왕화’의 영향은 멀어질수록 희미해지지만, 중화문화가 미치지 않는 ‘화외(化外)’의 땅이라 하더라도 ‘왕화’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 중화문화의 세계라고 한다.

‘왕화’사상은 전국시대(戰國時代:BC 5∼BC 3세기)로부터 진(秦) ·한(漢)나라에 걸쳐 형성되었다. 당시의 군주는 문무(文武) 관료를 양성하였고, 내외에 대하여 형벌이나 무력으로써 권력을 강화하였으나, 유가(儒家)에 속하는 사상가들(孔子 ·孟子 ·荀子) 등은 군주의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중시하였다. 광활한 중국 땅에 안정된 정권을 확립한 한왕조(漢王朝)는 그들의 덕치주의(德治主義)의 ‘왕화’사상을 받아들였다. 그 뒤 청나라에 이르는 2000년 동안 황제정치체제 밑에서 유교 관료, 지식인층에 의해 정착되었다. 왕자의 덕을 중핵으로 하여 생각된 세계질서 속에서는 종족적 ·민족적 차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찍이 춘추시대(春秋時代:BC 8∼BC 5세기)까지는 융(戎) ·적(狄) ·만(蠻) ·이(夷)라 하여 중화세계로부터 차별과 배척을 받던 이민족도 ‘왕화’를 기준으로 하면, 중화세계 속에 포함된다. 그 대신 한족(漢族)의 문화양식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의 가치는 부정되고 만다. 외국에서 통상사절이 와서 ‘조공(朝貢)’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왕화’사상은 무한하게 퍼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관념이나 영토관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19세기 이후 이른바 열강이 비교적 용이하게 중국의 영토나 이권을 분할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측에 명확한 국경이나 영토관념이 없었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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