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 TALK TALK!/○○② 영화TALK

[영화] 타인의 취향 (The Taste Of Others, Le Gout Des Autres)

우리는 모두 타인과 나눌 수 없는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습관, 편견, 취미, 개성 등으로 불리는 '취향'이 바로 그것이다. 취향은 자신을 남과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로 규정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때로는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고집으로 발현되거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옭아매는 지독한 면도 있다. 영화 ‘타인의 취향’은 한 연극배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중년 사장을 중심으로 각양각색의 '개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면서 제각기 다양하게 반응하는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고상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지만 불안정한 미래만이 쓸쓸히 손짓하고 있는 클라라와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만 교양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중년의 사장 카스텔라, 화사한 꽃무늬 문양을 좋아하는 카스텔라의 부인 앙젤리크, 전직경찰이었던 완벽한 모범시민 프랭크, 애인의 배신을 한 통의 편지로 받아보았을 때서야 비로소 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미련한 순둥이 브루노, 그리고 십년 전 잠자리를 같이 했던 남자에게 아는 체를 하는 여자 마니 등 여섯 인물 간에 벌어지는 소소한 갈등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에서 작용하는 ‘취향의 차이’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제목 그대로 ‘취향’이다. 내가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고려되는 것이 바로 타인의 취향이다. 사람들의 취향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얼굴 모습이 다른 것처럼 취향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기는 쉬울지 몰라도 취향이 다른 두 사람 사이에서는 그 차이가 끊임없이 오해와 갈등을 낳는다. 이러한 오해와 갈등은 두 사람관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카스텔라의 아내 앙젤리크는 확고한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취향만을 고집하며 타자와 세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자신의 취향이 타인의 취향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카스텔라와 자신의 집을 자신만의 취향대로 꾸미고 시누이의 집에 바를 벽지까지도 자신의 취향에 따르기를 강하게 권고한다. 이런 그녀의 태도로 인해 그녀가 있는 곳에는 자연히 갈등이 빚어진다. 결국 남편 카스텔라는 아내의 독선적인 태도에 질려 집을 나가기에 이른다.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과 독선이 비극적인 결말을 낳은 것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이혼부부들의 이혼 사유에서 성격 차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 성격이란 것을 취향이라고 환원시켜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서로의 취향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취향의 차이는 이성 관계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이는 부자∙부녀 사이나 친구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부모들은 자식을 자신들의 취향대로 하나의 석고 인형처럼 빚어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부모들의 손에 의해 꾸며진 인형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자연히 이들 사이에는 의견의 충돌이 빚어지게 된다. 나 또한 어렸을 적부터 자주 아버지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 옷차림, 머리, 방의 정돈 상태에서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나는 아버지와 다투었다. 아버지는 내가 자신의 기대대로, 즉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자라주길 바라셨다. 나도 어느 정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 때 마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서는 소규모의 다툼이 있었다. 서로가 옳다 그르다 하는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다툼 뒤에는 긴 시간의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대화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다시 원만해질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취향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서로 다른 관심사, 습관, 개성 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취향이 비슷할수록 서로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이런 통념과는 달리 나와 상당히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가 보여주는 행태는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소통 방식과는 상당히 어긋나는 지점에 놓여있었다. 굳이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에 비유하자면 동성연애자 커플이나 들 고양이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마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레슬링을 좋아하고, 수염을 길게 기르기도 하고, 선생님과 의견 차이로 다투고, 마르크스의 사회학이나 원색생물도감을 수업시간에 읽던 ‘별난’ 친구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특이함보다는 행동의 자유분방함에 이끌렸다. 나와 공통 관심사라고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만화, 정치 정도였음에 지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3년을 같은 반을 지내면서 가장 친한 친구로 남을 수 있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취향도 상당히 달랐던 우리는 3년 동안 다툰 적도 수없이 많았다. 남들이 봐도 어울리기 어려운 우리들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비밀은 대화에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오해가 생기거나 이견이 생겨 말다툼으로 번졌을 경우에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은 것은 서로간의 대화였다. 이런 일련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서로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있었기에 나는 말을 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취향이나 입장을 고려하는 역지사지의 태도를 갖출 수 있었다.
조선 후기의 박지원은 친구 사이에는 밀착이 아니라 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서 취향이 같은 사람만 끼리끼리 모이고 다른 사람은 따돌리는 것은 작당이지 사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를 생각하면 이 말이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다. 취향이 같은 사람끼리만 모이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 하나의 규율 아래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 폭력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친구란 이와는 다르게 서로 만나 우정을 나누는 사이이다. 그것은 둘 사이에 틈과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이를 조화롭게 만들어 조율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세상은 독주의 무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무대라고 볼 수 있다. 내 취향이 하나의 악기라면 타인의 취향은 또 다른 악기인 셈이다.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른 소리와 색깔을 지닌 오케스트라의 악기들과 같다. 그러므로 문제는 나의 악기와 다른 악기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플루트의 한 음도 제대로 내지 못했던 브루노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른 연주들과 멋지게 합주를 해낸다. 그는 여전히 한 음만 삑삑댈 뿐이지만 다른 플루트들과의 조화 속에서 필수적인 음으로 자리 잡는다. 홀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보다는 마지막 장면처럼 여러 사람들이 화음을 맞춰 연주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는가? 모두가 타인의 취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운오케스트라 무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pen2ⓦorld™ ⓗome
http://open2world.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