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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삼국지 - 정사 "곽가전"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22:05

삼국지 Ⅸ의 곽가

삼국지 Ⅸ의 곽가



지략으로 보면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곽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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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전(郭嘉傳)

곽가는 자가 봉효이고, 영천군 양적현 사람이다.

처음에는 북방을 지나다가 원소를 만났는데, 원소의 모신으로 있었던 신평과 곽도에게 말했다.

"무릇 지혜가 있는 사람은 주군이 될 사람을 헤아려야만 백 번 군대를 일으켜 백 번 완벽하게 공명이 세워질 수 있는 것이오. 원공은 한갓 주공의 낮은 선비를 모방하려 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기틀을 알지 못하고 있소.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서단은 많으나 요령이 적고, 모략을 좋아하지만 결단력이 없어 그와 더불어 천하의 큰 난국을 구제하고 패도로서 왕업을 정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그리고는 마침내 원소를 떠났다. 이보다 앞선 시기에 영천의 희지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책략에 뛰어난 인물이므로 조조는 그를 매우 중용했지만, 일찍 죽었다.

조조는 순욱에게 글을 써서 말했다.

- 희지재가 죽은 이후로는 나와 더불어 일을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이 없소. 여남과 영천에는 본래 뛰어난 인물이 많거늘, 누가 희지재를 계승할 수 있겠소?

순욱은 곽가를 추천하였다. 조조는 그를 불러 천하의 일을 논의하고, 곽가에게 말했다.

"나로 하여금 큰 일을 이룰 수 있게 할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구나."

곽가는 밖으로 나가서 역시 기뻐하며 말했다.

"조공은 진정 나의 주공이구나!"

조조는 표를 올려 곽가를 사공군좨주로 삼았다.

조조가 여포를 정벌할 때 세 번 싸워 그를 격파하자, 여포는 퇴각하여 성을 굳게 지켰다. 그 당시 조조 군대의 사졸들은 지쳐있었으므로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잡아오려고 생각했는데, 곽가가 조조에게 급히 공격하라고 설득하여 마침내 여포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 일은 <순유전>에 있다.

손책(손책)은 1천 리에 걸쳐 전선을 구축하고 강동의 주군을 거의 소유하였다.

그는 조조가 원소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강을 건너 북방의 허도(허도)를 습격하고자 했다. 조조 진영의 모든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였는데, 곽가는 이 일을 헤아려 말했다.

"손책은 이제 막 강동을 병탄한 것이며, 그에 의해서 주살된 자들은 모두 영웅 호걸이며 주군을 위해 죽을 힘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손책은 경솔하고 대비도 없으니, 비록 백만의 군대가 있다고 해도 혼자 중원(중원)에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만일 자객이 숨어 있다가 일어나면 단지 한 사람의 적일 뿐입니다. 제가 그를 보건대 반드시 필부의 손에 의해서 죽을 것입니다."

손책은 장강에 임하여 건너기도 전에 과연 허공(허공)이라는 자객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다.

후에 곽가는 조조를 따라 원소를 격파했다. 원소가 죽은 후에 또다시 대군을 따라 원담과 원상을 여양에서 크게 물리쳐 모두 승리했다. 여러 장수들은 승리한 여세를 몰아 그들을 크게 공격하려고 했으나, 곽가가 말했다.

"원소는 이 두 아들을 사랑했으나, 생전에 누구를 세워야 할 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곽도와 봉기가 그의 모신이 되었지만, 반드시 원씨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 다투다가 역시 서로 어그러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군대가 그들을 핍박하면, 그들 형제는 군대를 합쳐 우리와 서로 대치하게 될 것이고, 그들을 느슨하게 풀어주면 그들 형제는 다투려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남쪽으로 가서 유표를 정벌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리고서 형세의 변화를 기다렸다가 변화가 생긴 후에 공격하면 한 번 출동으로 평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좋소"

그리고는 남쪽으로 정벌을 떠났다. 군대가 서평(서평)에 이르렀는데, 원담과 원상은 과연 기주를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었다. 원담은 원상에게 패배하게 되자 달아나 평원(평원)을 지켰으며, 아울러 신비를 보내 조조에게 항복을 구했다.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 그를 구해주었으며, 마침내 업성을 공략하였고, 또 다시 남피에서 원담을 공격하자 기주는 평정되었다.㈜ 조조는 표를 올려 곽가를 유양정후(유양정후)로 봉하게 했다. 조조가 원상 및 삼군의 오환족을 정벌하려고 할 때, 부하들은 대부분 유표가 유비를 파견하여 허도를 습격함으로서 조조를 칠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는데, 곽가가 말했다.

"명공은 비록 천하에 위세가 진동하지만, 오랑캐들은 그가 먼 곳에 있는 것만 믿고 반드시 방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방비하지 않은 것을 틈타 갑자기 그들을 공격하면 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원소는 항상 북방 오랑캐의 민중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원상 형제도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지금 원씨가 다스리는 네 주의 백성들은 공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잠시 귀순하게 되며, 명공께서는 은덕을 더 이상 베푸시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만일 원상을 남겨 놓고 남쪽으로 정벌하러 가시면 원상은 한족의 도움에 의지하여 다시 주인을 위해 죽음을 본받았던 신하들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고, 오랑캐들이 다시 한 차례 충돌하면 한족들이 모두 호응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오환의 선우 답돈은 또 다시 남쪽으로 중원을 넘보려는 야심을 품게 될 것이며, 제업(제업)의 야심을 이루게 되면, 아마도 청주와 기주도 우리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 유표는 단지 앉아서 이야기하는 세객(세객)일 뿐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재략이 유비를 제어하는 데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유비에게 중임을 맡기면 제지할 수 없을 것이고, 유비를 하찮은 직책에 임용하면 유비는 쓸모가 없으니, 공께서 비록 나라를 비워두고 멀리 정벌하러 가더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조조는 이 말을 듣고 드디어 떠났다. 대군이 역현(역현)에 이르자 곽가가 말했다.

"군대는 신속함을 귀하게 여깁니다. 지금 천 리나 행군하여 다른 사람을 습격하는데, 치중이 너무 많아 이로움을 얻기가 힘들며, 또한 적들이 공격소식을 듣고서 반드시 방비하게 될 것이니, 치중을 남겨두고 가볍게 무장한 병사들을 낮과 밤을 달려 충돌하게 되면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습격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조조는 곧 비밀리에 노용새(노용새)에까지 보내어 직접 선우 답돈의 용정(용정)에까지 이르게 했다. 파로(파로)의 병졸들은 조조의 대군이 갑자기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면서 맞붙어 싸웠다. 조조는 오환군(오환군)을 크게 이기고, 답돈의 머리를 베었으며, 각왕(각왕;큰 부족의 왕) 이하의 지도자를 모두 참수했다.

원상과 그의 형 원희는 요동으로 달아났다.

곽가는 깊은 통찰력이 있었고 모략(모략)을 세우는 데 뛰어났으며, 사리와 인정(人情)에 대해서는 통달했다. 조조가 말했다.

"오직 봉효(봉효;곽가의 자)만이 나의 뜻을 확실히 알 수 있소."

나이 서른여덟에 유성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질병이 심했다. 조조는 그의 질병에 관해 물어보고 여러 차례 문병을 갔다. 곽가가 죽었을 때, 조조는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매우 슬퍼하면서 순유 등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의 나이는 모두 나와 동년배지만, 오직 봉효만이 가장 젊소. 천하를 평정하는 일이 끝나, 그에게 뒷일을 부탁하려고 했는데, 중년의 나이에 요절하였으니, 이는 운명이요!"

곧 이어 천자에게 표를 올려 말했다.

- 군좨주(군좨주) 곽가는 정벌에 따라 나선지 11년이 되었습니다. 매번 중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적을 만나면 변화에 대처하였습니다. 신의 책략이 결정되지도 않았을 때, 곽가는 문득 그것을 처리하였습니다. 천하를 평정하는데, 그의 모략과 공적은 높습니다.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대업을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곽가의 공을 거슬러 생각해 보면, 진실로 잊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식읍을 8백호 증가시켜 주시어 이전의 것과 합쳐 1천 호가 되도록 해 주십시오."

시호를 정후(정후)라 하고, 아들 곽혁(곽혁)으로 하여금 뒤를 잇게 했다.

나중에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고 돌아올 때, 파구(파구)에서 역질을 만나 군함을 모두 태워 버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곽봉효가 살아 있었더라면, 나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전에 진군(진군)은 곽가의 품행이 수양되어 있지도 않고 검소하지도 않다고 하면서 비난하였고, 몇 차례에 걸쳐 조정에 곽가를 기소했지만, 곽가의 의지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으므로 조조는 곽가를 더욱더 중시했다. 그러나 조조는 진군이 정도(정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역시 그에게도 호감을 갖고 있었다.

곽혁이 태자의 문학(문학)이 되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 곽심(곽심)이 뒤를 이었다. 곽심이 죽자, 아들 곽창(곽창)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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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삼국지 - 정사 "이엄전"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21:57

삼국지 Ⅸ의 이엄(이평)

삼국지 Ⅸ의 이엄(이평)



촉의 이엄(이평)에 대한 글입니다. 상당히 좋은 평을 받은 인물이었으나 한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거짓 보고)로 쓸쓸히 초야에서 생을 마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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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엄은 자가 정방이고, 남양군 사람이다. 젊었을 때 군의 관리가 되었고, 잭산으로 인하여 칭찬받았다. 형주목 유표는 그를 차견하여 여러 군현의 장을 역임하도록 했다. 조조가 형주로 진입했을 때, 이엄은 자귀현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서쪽의 촉나라로 달아났다. 유장은 그를 성도의 현령으로 임명했고, 그는 또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안 18년(213)에 이엄을 호군으로 임명하여 면죽에서 유비를 막아내도록 했다. 그런 이엄은 병사들을 이끌고 유비에게 투항했다. 유비는 이엄을 비장군으로 임명했다. 성도가 평정된 후, 건위태수, 흥업장군으로 임명 되었다.

23년(218)에 도적 마진, 고승등이 처에서 모반하여 수만 명을 모아 자중현으로 진격했다. 그 당시 유비는 한중에 있었고, 이엄은 다시 병사를 징발할 수 없었다. 단지 그 군의 병사 5천 명을 이끌고 토벌하러 가서 마진과 고승등의 머리를 베었을 뿐이다.

잔여세력들은 뿔뿔이 흩어져 전부 민적으로 회복되었다. 또 월수 만족의 우두머리 고정이 군대를 파견하여 신도현을 포위하자, 이엄은 기병을 이끌고 달려가 구원하여 적은 모두 달아났다. 보한장군의 관직을 더했으며, 건중군을 관리하는 것은 이전과 같았다.

장무 2년(222)에 유비는 이엄을 불러 영안궁까지 오도록 하여 상서령으로 임명했다. 3년(223)에 유비의 질병이 악화되자, 이엄은 제갈양과 함께 어린 유선을 보좌하라는 유조를 받았다. 이엄을 중도호로 임명하고 안팎의 군사를 통솔하며 영안에 주둔하도록 했다.

건흥 원년(223)에 도향후로 봉하고 가절로 삼고 광록훈을 더했다. 4년(226)에 전장군으로 전임됐다. 제갈양은 한중으로 출병하려고 하면서 이엄이 반드쉬 뒷일을 맡아 줄것으로 생각하고 강주로 옮겨 주둔시키고, 호군 진도를 남겨 영안에 주둔시켜 모두 이엄의 통솔하에 두었다. 이엄은 맹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저는 제갈공명과 함께 유비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책임이 막중한 것이 걱정입니다. 좋은 동반자를 얻고 싶습니다.

제갈양 역시 맹달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치 물흐르듯하여, 해야할 일과 버려야 할일을 결정할때 주저함이 없는 것이 정방의 성격입니다.

이엄이 귀하게 존중받는 것은 이와 같았다.

8년(230)에 표기장군으로 승진했다. 조진이 세 갈래 길로 나누어 한천으로 진격해 왔으므로, 제갈양은 이엄에게 2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한중에 가도록 명령했다.

제갈양은 표를 올려 이엄의 아들 이풍을 강주도독독군으로 임명하고, 이엄의 후방 일을 담당하도록 했다. 제갈양은 다음해 출병을 확정짓고 이엄에게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의 일을 맡도록 명령했다. 이엄은 이평으로 개명했다.(이엄=이평)

9년(231) 봄에 제갈양의 군대는 기산에 주둔하였고, 이평이 수송 업무를 재촉하며 감독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으므로,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 제갈양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으로 날란체 하며 말했다.

"군량미는 아직 충분하거늘, 어찌하여 돌아옵니까?"

이평은 이렇게 하여 자기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벗어나고 제갈양이 진군하지 않은 잘못을 분명하게 나타내려고 했다. 또 유선에게 표를 올려 말했다.

우리 군대가 거짓으로 퇴각한 것은 적을 유인하여 함께 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갈양이 이평이 앞뒤로 쓴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공개했으므로, 이평의 잘못은 분명해지게 되었다. 이평은 힘껏 변명하고 죄를 자백하고 사죄했다. 그래서 제갈양은 이평의 일을 상주하여 말했다.

선제께서 붕어하신 이후부터 이평은 임지에서 기산을 다스리며 작은 은혜를 베푸는 일을 하기를 원했고, 자신을 지키고 명예를 추구하며 나라의 일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북방으로 출병을 하면서 이평의 병사들에게 한중을 지키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이평은 이일을 직접 하기에는 어려우며, 올 의사가 없었으므로 다섯 개 군을 주어 파주자사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작년에 신이 서쪽으로 정발나가려고 하면서 이평으로 하여금 한중을 관리하도록 했는데, 이평은 사마의 등이 관서를 설치하여 자신을 초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은 이평의 계산으로 출병한 기회를 틈타 신을 핍박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얻도록 하려고 했음을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표를 올려 이평의 아들 이풍에게 강주를 관리하도록 하고 융성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한 시기의 정무를 처리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평이 한중에 있을 대, 모든일을 그가 책임지도록 했으므로 신하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모두들 신이 이평을 너무 후하게 대우한다며 질책했습니다. 그대는 국가의 대사가 아직 확정되자 못했으며 한나라 왕실이 기울어 위험하였으므로, 이평의 잘못을 문책하는 것은 그를 칭찬하는 것만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평의 마음은 영예와 이익에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이평의 마음이 시비를 전도시키는 데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만일 일의 처리를 늦추게 된다면 재화와 실채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신이 민첩하지 못한 결과이며, 설며을 많이 할수록 허물은 늘어 날 것입니다.

곧바로 이평의 관직을 폐하여 서민이 되게 했으며, 재동군으로 방축시켰다.

건흥 12년(234)에 이평은 제갈양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질병이 들어 죽었다. 이평은 항상 제갈양이 자신을 다시 살려줄 것으로 기대했으며, 제갈양의 후계자는 이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임을 헤아렸기 때문에 격분하여 결국 병들어 죽은 것이다. 이풍의 관직은 주제태수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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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삼국지 - 정사 "주유전"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21:33

삼국지 Ⅸ의 주유

삼국지 Ⅸ의 주유



김원중의 정사 삼국지에 있는 '주유전'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리지만 연의와는 내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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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전

주유는 자가 공근이며 여강군 서현사람이다. 당조부 주경과 주경의 아들 주충은 모두 한나라 태위를 지냈다. 부친 주이는 낙양현의 령을 지냈다.

주유는 건강하고 자태와 용모가 뛰어났다. 처음에 손견이 의병을 일으켜 동탁을 토벌할 때, 그는 집을 서현으로 옮겼다. 손견의 아들 손책은 주유와 나이가 같았으며, 두 사람의 우정은 남달랐다. 주유는 길 남쪽의 큰 저택을 손책에게 주고 방으로 들어가 그의 모친에게 배례했으며, 서로 있는것과 없는 것을 융통하며 돕고 살았다. 주유의 당부 주상이 단양태수로 있었는데 주유는 그를 찾아가 안부를 물었다. 마침 손책이 역양까지 있었으므로 급히 편지를 써서 주유에게 알렸다. 주유는 병사를 인솔하여 손책을 맞이했다. 손책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그대를 얻었으니, 전쟁은 순조롭게 될 것이오."

주유는 그래서 손책을 따라 횡강과 당리를 공격하여 모두 함락시켰다. 그리고 또 강을 건너 말릉을 공격하고, 작융과 설례를 격파시켰으며, 방향을 돌려 호숙과 강승을 공격하고 곡아로 진입하자 유요는 달아났으며, 손책의 병사는 이미 수만 명이 되었다. 그래서 손책은 주유에게 말했다.

"나는 이 병력이면 오국과 회계군을 취하고 산월을 평정하기에 충분하오. 그대는 돌아가서 단양을 지키시오."

주유는 돌아왔다. 오래지 않아, 원술이 주상을 대신할 태수로 사촌 동생 원윤을 보냈으므로 주유는 주상과 함께 수춘으로 돌아왔다. 원술은 주유를 부장으로 임용하려고 했지만, 주유는 원술에게는 끝내 성취할 것이 없음을 보았기 때문에 거소현의 장이 되기를 구하여서 길을 빌려 강동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며, 원술은 이에 동의했다. 그래서 주유는 거소에서 오로 돌아왔다. 이 해가 건안 3년(198)이다. 손책은 직접 주유를 영접하고, 건위중?"아장을 수여하고 즉시 병사 2천명과 기마 50필을 주었다. 주유는 당시 24세였고, 오군 사람들은 모두 그를 주랑이라고 불렀다. 주유의 은덕과 신의는 여강에서 빛났다. 손책은 그를 지방으로 내보내 우저를 지키도록 하고, 후에 춘곡현의 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오래지 않아, 손책이 형주를 취하려고 할때, 주유를 중호군으로 임명하고 강하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주유는 손책을 따라 환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당시 교공의 두 딸을 포로로 잡았는데, 모두 절색이었다. 손책 자신은 대교를 아내로 맞이했고, 주유는 소교를 아내로 맞이했다. 또 주유는 심양으로 진격하여 유훈을 격파시켰으며, 강하를 토벌하고 예장과 여릉으로 돌아와 평정하고 파구에 남아서 지켰다.

5년(200)에 손책이 죽자, 손권이 일을 통솔했다. 주유는 병사를 이끌고 조상하러 갔다가 오에 머물러 중호군으로써 장사 장소와 함께 모든 일을 관장했다.

11년(206), 그는 손유 등을 인솔하여 마둔과 보둔 두 주둔지를 토벌하고, 그곳의 우두머리의 목을 베어 나무에 매달았으며, 1만여 명을 생포해 군사를 돌려 궁정을 지켰다. 강하태수 황조가 부장 등룡을 보내 병사 수천명을 이끌고 시상으로 진입하도록 했다. 주유는 추격하여 토벌했으며, 등룡을 생포해 오군으로 보냈다.

13년(209) 봄, 손권이 강하를 토벌하고, 주유를 전부대독으로 임명했다.

이 해 9월, 조조가 형주를 침공하자, 유종은 수하의 사람들을 들어 투항했다. 조조는 그의 수군을 얻게 되었으며, 그 결과 수병과 보병은 수십 만 명이나 되었다. 오의 장수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두려워 했다. 손권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서 계책을 물었다. 논의하는 자들은 모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조는 승냥이와 호랑이처럼 사악하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나라 승상의 명의에 기대어 천자를 끼고 사방을 정벌하고 움직이면서 조정의 뜻이라고 하는데, 오늘 그에게 저항한다면 일은 더욱 순조롭지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장군에게 있어서 유리한 형세로 조조를 대항할 수있습니다. 유표는 수군을 훈련시켰고 몽충이나 투함이 수천 대 인데, 조조가 이것을 모두 포획하여 장강가에 늘어놓고 아울러 보병도 움직여 수군과 육군이 함께 내려온다면, 이때는 장강이 위험하게 되고, 이미 우리와 공동으로 차지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쌍방의 세력은 현저하게 차이가 나므로 또 논할 수없습니다. 가장 좋은것은 그를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저희들은 생각합니다."

주유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조는 비록 한나라 승상의 명의에 의탁하고 있지만, 사실은 한나라 조정의 적입니다. 장군은 신명스런 무위와 웅대한 재략을 갖고 있고, 겸하여 아버지와 형의 위세이 기대어 강동을 할거하고 수천 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병사는 정예이고 식량은 풍족하며 영웅들은 공업을 이루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웅당 천하를 횡행하며 한왕조를 위해 잔폭하고 더러운 것을 제거할 때입니다. 게다가 조조는 직접 사지로 보내져왔는데,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장군을 위해 헤아려보기를 요청합니다. 지금 북방의 영토를 이미 안정시켰고 조조에게 내부의 근심이 없어 시일을 늘려 오랫동안 전쟁터로 와서 싸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 우리와 수면 위에서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지금 북쪽 땅은 아직 평안하지 못하고, 게다가 마초와한수가 오히려 동관 서쪽에 있으면서 조조의 후환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병을 버리고 수군에 기대어 오나 월과 다투는 것은 본래중원에서는 잘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또 현재는 날씨가 추워 말에게 먹일꼴이 없고, 중원의 병사들에게 멀리 강호의 땅을 건너도록 하였으므로 물과 땅에 익숙지 못하여 반드시 질병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는 용병의 근심거리입니다.그러나 조조는 함부러 행동했습니다. 장군께서 조조를 잡으려고 한다면, 오늘이 마땅합니다. 저는 정예병사 3만 명을 받아서 하구로 나아가 주둔하기를 원합니다. 장군을 위해 조조를 무찌를 것을확신합니다."

손권이 말했다.

"사악한 적이 한왕실을 페하고 스스로 황제로 일어서러고 한 것은 오래되었소. 단지 원씨 두명, 여포, 유표와 남나을 꺼러했을 뿐이요. 지금 몇몇 영웅은 이미 소멸되었고, 오직 나만 여전히 남아있소. 나는 사악한 적과 양립할 수 없는 형세요. 그대가 당연히 공격해야 한다고 한 것은 나의 생각과 매우 부합하는 것이며, 이는 하늘이 그대를 나에게 준 것이오."

이때 유비는 조조에게 격파되어 병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강을 건너려고 생각하였는데, 당양에서 노숙과 만나 함께 상의하고 계획하여 나아가 하구에 주둔하고는 제갈양을 파견하여 손권을 알현하도록 했다. 손궈은 곧 주유와 정보 등을 파견하여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에게 대항하도록 했다. 두군대는 적벽에서 만났다. 당시 조조의 병사들은 이미 질병에 걸려 있었으므로, 처음 한 차례 싸움에서 조조의 군대는 패하여 장강 북쪽에 주둔했다. 주유 등은 남쪽 해안가에 있었다. 주유의 부장 황개가 말했다.

"지금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기 때문에 오랜 시간 싸우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조조 군대의 배는 앞뒤가 서로 이어져 있으므로 불을 질러 달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유는 몽충과 투함 수십 척을 취해 풀을 가득 싣고 그 가운데에 기름을 부어 휘장을 씌우고, 위에 아기를 세웠다. 그리고 먼저 편지를 써서조조에게 거짓으로 항복한다고 알렸다. 또 날랜 배를 미리 준비하여 각각 큰 배의 뒤에 매고 순서대로함께 전진했다. 조조 군대의 관리와 병사들은 모두 목을 빼고 바라보며 황개가 투항한다고 말했다. 황개는 여러 배를 풀어 동시에 불을 질렀다. 당시는 바람이 매우 사나웠으므로 해안 위의 진에까지 불길이 번졌다. 순식간에 연기와 불꽃이 하늘 가득 퍼졌고, 불에 타죽거나 익사한 병사와 말의 수는 헤아릴수 없었다. 조조의 군대는 결국 패하여군사를 돌려 남군을 지켰다. 유비는 주유 등과 함께 또 힘을 합쳐 추격했다. 조조는 조인 등을 남겨 강릉성을 지키도록 하고, 자신은 곧장 북쪽으로 돌아갔다.

주유와 정보는 또 남군으로 전진하여 조인과 서로 대치하였는데, 각군은 대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병사들이 아직 싸움을 하기도 전에 주유는 감녕을 보내 공격하며 포위해 들어갔다. 감녕은 주유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주유는 여몽의 계획을 사용하여 능통을 남겨 그 뒤를 지키도록 하고, 자신은 여몽과 함께 감녕을 구하러 갔다. 감녕의 포위가 풀린 후, 주유는 강을 건너 북쪽 해안에 주둔하고 조인과 대전할 날을 정했다. 주유는 직접 말을 타고 싸움을 지휘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오른쪽 겨드랑이를 맞아 상처가 대단히 심했으므로 곧 바로 돌아왔다. 후에 조인은 주유가 일어나지 못하고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를 이끌고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주유는 직접 일어나서 군영을 시찰하고 관리와 병사들을 격려했다. 조인은 이 때문에 후퇴했다.

손권은 주유를 편장군으로 제수하고, 남군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하준·한창·유양·주릉을 그의 봉읍으로 삼게 하고, 강릉에 주둔하여 지키도록 했다. 유비는 좌장군의 신분으로 형주목을 겸임하고 공안에 주둔했다. 유비가 경까지 와서 손권을 알현했을 때, 주유가 상소를 올려 말했다.

유비는 용맹하여 영웅다운 자태를 갖고 있으며, 관우와 장비처럼 곰과 호랑이 같은 장수를 끼고 있으므로 틀림없이 오랫동안 몸을 굽혀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유비를 오군으로 옮겨 놓고 그를 위해 궁전을 성대하게 짓고 미녀와 진귀한 완구를 많이 주어서 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관우와 장비 이 두 사람을 나누어 각기 한쪽에 배치하고 저같은 자로 하여금 그들을 지휘하여 싸우게 한다면, 대사는 안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토지를 나누어 주어서 그들이 기반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고, 이 세 사람을 모아 함께 변방 땅에 있도록 한다면, 아마 교룡이 구름과 비를 얻어서 끝내 연못 속의 물건이 안되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손권은 조조가 북방에 있기 때문에 응당 영웅들을 널리 촙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유비를 끝까지 제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주유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당시 유장은 익주목이 임명되었는데, 밖으로는 장로의 약탈과 침략이 있었다. 주유는 경으로 가서 손권을 알현하고 말했다.

"지금 조조는 방금 좌절과 고통을 당하여 마침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있으므로 아직은 장군과 병사를 이어서 서로 싸우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분위장군과 함께 촉을 취하러 나가기를 원합니다. 촉을 얻고 장로를 병합한 후에 분위장군을 남겨 그 땅을 단단히 지키도록 한다면, 마초와 동맹관계를 맺을 것입니다. 저는 돌아와 장군과 함께 양양을 점거하여 조조를 추격한다면, 북방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손권은 주유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주유는 강릉으로 돌아와 행장준비를 하고 파구를 지날 때 병사했다. 당시 그는 36세였다. 손궈은 소복을 입고 애도하였는데, 주의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주유의 영구가 오나라로 돌아오자, 손권은 또 무호로 가서 맞이했으며, 모든 비용을 일체 공급했다. 후에 명령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인이 된 장군 주유와 정보의 집안에 있는 손님들에게는 부세와요역을 묻지 말라.

당초 주유는 손책에게 좋은 친구로 대우받았고, 태비 또한 손권으로 하여금 형의 예로써 받들도록 했다. 이때 손권의 직위는 장군이었고, 그의 부장들과 빈객들의 그에 대한 예절은 오히려 간단했지만, 주유만은 유독 일찍부터 존경을 다하여 신하로써의 예절을 지켰다. 주유는 성격이 너그럽고 넓어서 대체로 인심을 얻었는데, 오직 정보와는 화해롭지 못했다.

주유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정통하였다. 비록 술을 많이 마신 후일지라도 연주한 음악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주유는 반드시 그것을 알아냈고, 그것을 알아내면 반드시 돌아보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가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곡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주랑이 돌아본다."

주유는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었다. 딸의 배필은 태자 손등이었다. 아들 주순은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기도위로 제수되었고 주유의 풍모가 있었는데, 요절했다. 주순의 동생 주윤은 처음에 흥업도위로 임명되었고 종실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며, 병사 1천 명을 인솔하여 공안에 주둔했다. 황룡원년(229), 도향후로 봉해졌으며, 후에 죄를 범하여 여릉군으로 옮겼다.

적오 2년(239), 제갈근·보즐이 이름을 나란히 하여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인이 된 장군 주유의 아들 주윤은 지나친 칭찬을 받아 장군으로 봉해짐을 받았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두터운 대우를 받을 수 없을때는 공을 세우려고 생각하였으나, 도리어 방종하고 사용에 집착하여 매우 빨리 죄를지어 처벌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신들의 사사로운 생각으로는, 주유는 과거 총애와 신임을 받았고, 안으로 들어오면 심복이 되었고, 밖으로 나가면 보좌하는 장수가 되었으며, 명을 받아 출정하면 죽음을 보고 돌아오는 것처럼 했습니다. 때문에 오림(적벽)에서 조조를 패배시키고, 영도(강릉)에서 조인을 도망치게하여 국가의 위험과 은덕을 떨쳐 전국이 진동하였으며 우매한 만형 중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주의 방숙, 한의 한신인 영포일지라도 진실로 그를 뛰어 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적군을 꺾고 국가의 어려움을 막아낸 신하로서 옛날부터 제왕들에게 귀하게 여겨지고 중요시되지 않은자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한고조는 작위를 봉하는 서약서에서 말하기를, '설사 황하가 허리띠처럼 되고, 태산이 마모된 돌처럼 되더라도 그들의 봉국은 영원히 존재하도록 하여 후배 자손들에게 전하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붉은 글로써 맹서 의식을 융숭히 하고, 종묘속에 넣어 두고 영원히 전해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공신의 후배들로 하여금 대대로 계승하여 자손뿐만 아니라 더욱 먼 후대까지도 관심을 기울려 신하의 공덕에 보답하고 표창하려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것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권하고 경계하여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신하가 되어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물며 주유가 죽은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의 아들 주윤을 강등시켜 평민이 되게 하였으니, 더욱더 슬픕니다. 저희들의 생각으로는, 폐하께서는 고대의 일을 고찰하여 정사를 영명하게 처리하며, 제후국을 일으키고 후계자를 세우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으므로 주윤을 위해 청하니, 그의 죄를 사면시켜 주시고 병사들을 돌려주고 작위를 회복시켜 주어서 아침을 잘못알린 닭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울 수 있도록 하고, 죄지은 신하도 이후에 효락을 펼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손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심복이 되어 이전에공을 세우고 나의 함께 협력하여 일을 한 자 중에는 주공근이 있었는데, 확실히 잊지 못하오, 옛날 주윤이 나이가 어렸으며, 처음에는 공로가 없었는데도 정예 병사를 받아 지휘하고 왕후 장군의 작위로 봉해진 것은 주공근을 생각하여 주윤에게 미쳤던 것이오. 그런데 주윤은 이러한 것에 기대어 주색에 빠져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앞뒤로 몇 차례 말하여 깨우치게 하였지만, 일찍이 고친 일이 없었소. 나와 주공근과의 정의는 당신들 두 사람과의 것과 똑같은데, 주윤이 성취하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 어찌 멈춰 있겠소? 주윤의 죄악을 구명하여 즉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고통을 받게 하여 스스로 알도록 하려는 것이오. 지금 당신들 두 사람이 한고조의 황하와 태산의 맹서를 간절히 인용하니, 나는 부끄럽소. 비록 나의 덕행은 한고조와 같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오. 주공근의 자식이고 두 사람이 중간에 있으니, 고치도록 할 수 있다면 또한 무슨 근심이 있겠소!"

제갈근과 보즐은 누차 표를 올렸고, 주연과 전종 또한 함께 진술하여 요청하였으므로 손권은 비로서 이를 허락했다. 이때 주유는 병으로 죽었다.

주유의 조카 주준 역시 주유의 탁월한 공로 때문에 편장군으로 임명되었고, 관리와 병사 1천 명을 인솔하게 되었다. 주준이 죽자, 전종은 표를 올려 주준의 아들 주호를 장수로 임명하려 했으나 손권이 말했다.

"이전에 조조를 달아나게 하고 형주를 개척한 것은 모두 주공근이 한일이니, 영원히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처음 주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때 주호를 임용하려고 했지만, 주호의 품성과 행실이 음험하다는 것을 들었다. 그를 관리로 임명하면 화란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이 생각을 멈추었다. 그러나 내가 주공근을생각하고 있는 것이 어찌 그침이 있겠는가?"


출처: 김원중 옮김의 정사삼국지.

p.s. 주유에게 잘못 한일이 있다면 그것은 공명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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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의 인물평
ⓞ2ⓦ TALK TALK!/○○⑦ 역사TALK | 2008.06.15 19:55

본 글은 정사 삼국지에 있는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정사 삼국지는 '진수'가 편찬한것으로 나관중, 배송지의 연의와는 확실히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연의와 비교하면 조금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써서 약간 딱딱한 감도 있죠.

아래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평을 몇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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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유비는 도량이 넓고 의지가 강하며 마음이 너그러웠으며, 인물을 알아보고 선비를 예우했다. 그는 한고조의 풍모를 갖고 있었으며, 영웅의 그릇이었다. 그가 모든 국가와 태자를 보좌하는 일을 제갈양에게 부탁하고, 마음으로 의심이 없었던 것은 확실히 군신의 지극한 공심이며 고금을 통해 가장 훌륭한 모범이었다. 유비는 임기응변의 개간과 책략에 조조에 미치지 못했지 때문에 국토또한 협소했다. 그러나 좌절해도 굴복하지 않으며, 끝까지 조조의 신하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조조의 도량으로는 틀림없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 할 것으로 예측하여 그와 이익을 다투지 않았으며, 그래서 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방통 & 법정

방통은 인물을 품평하기를 좋아하고 경학과 책모에 뛰어났으므로, 그 당시 형,초, 사람들은 그를 고아하고 준수한사람이라고 했다. 법정을 일의 성공과 실패를 정확이 예견할 수 있었으며, 기이한 계획과 책술을 소유한 사람이였지만, 평소 덕성으로써는 칭찬받지 못하였다. 이들은 위나라의 신하들과 비교하자면, 방통은 순욱의 형제벌이고 법정은 정욱,곽가의 무리이다.


*조조

한나라 말기는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영웅 호걸이 동시에 군대를 일으켰다. 그 중에서 원소는 4주를 근거로 하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며, 그의 강성함은 대적할 자가 없었다. 조조는 책략을 이용하고 계략을 세워 무력으로써 천하는 정복하였다. 신불해와 상앙의 치국 방법을 받아들이고, 한신과 백기의 기발한 책략을 사용하였다. 서로 다른 재능이 있는 자에게 관직을 주고, 각 사람이 갖고 있는 기능을 이용하며 자기의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한 계획에 따랐다. 옛날의 악행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마침내 국가의 큰 일을 완전히 장악하고 대사업을 완성시킬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명석한 책략이 다른 사람에 비해 가장 우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비범한 인물이며,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언 & 유장

옛날 전한 초기에 위표는 허부의 말을 듣고 박희를 아내로 맞이 하였고, 유흠은 도참의 문자를 보고 이름과 자를 바꾸었지만, 끝내 몸은 그 위험을 면하지 못하였고, 두 군주(전한의 효문제,후한의 광무제)에게 그 행운이 주어졌다. 이것은 신명이란 헛되이 구할수 없고, 천명은 망령되이 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한 필연적 증거이다. 그런데 유언은 동부의 말을 듣고, 익주 땅에 마음을 두고, 점치는 사람의 듣고 오씨와의 혼인을 구하고, 급히 천자의 수레와 관복을 만들고 황제의 자리를 훔치려고 기도했다.그의 미혹됨은 심하다. 유장의 재능은 영웅에 미치지못했지만, 땅은 차지하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소인이 군자의 지위를 빼앗아 두둑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이치이다. 그가 익주목의 지위를 탈취한 것은 불행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조비)

문제는 천부적으로 문학적 소질이 있었으니, 붓을 대면 문장이 되었고, 넓은 지식도 갖추 고 있었고, 기억력이 탁월해 다방면으로 재능을 갖추었다. 만일 여기에 그의 도량이 약간만 더 크고 공평한 마음 씀씀이에 힘쓰며 도의의 존립에 노력을 기울이고 덕망있는 마음을 더욱 넓힐수 있었다면 옛날의 현명한 군왕이 어찌 그로부터 멀리 있었겠는가?


*명제(조예)

명제는 침착하고 굳세며 결단력과 식견을 갖추고 있었으며, 마음에 임하여 행동하고, 백성들에게는 군주의 지극한 기개를 갖추고 있었다. 그 당시 백성들은 생활이 피폐하고 온 천하는 분열 되었으나, 조예는 선조의 빛나는 대업을 먼저 생각하거나, 왕업의 기틀 을 다지지 않고 진시황이나 한무제를 급히 모방하여 궁전을 지었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원대한 관점으로서 헤아리면 이는 아마도 결점인 지인저!

*황권, 이회, 여개, 마충, 왕평, 장의

황권은 학식이 넓고 아정하며 도량이 넓었고, 이회는 공정하고 정직했으며 공업에 뜻을 이루었고, 여개는 절개를 지켜 옮기지 않았고, 마충은 온순했지만 과감하게 결단하고, 왕평은 충성스럽고 용감하고 엄정했으며, 장의는 식견이 탁월하고 과단성이 있었다.이들이 모두 자신의 장점에 의지하여 명성을 날리고 자취를 나타낼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필요 하는 시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제갈양

제갈량은 나라의 승상으로서 백성을 따뜻이 어루만지고, 예의와 규범을 보여주었으며, 벼슬자리를 줄여 백성의 짐을 덜고, 권위와 제도를 따랐다.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탬이 된 자는 비록 원수일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었고, 법을 어기거나 일을 게을리한 자는 비록 가까운 이라도 꼭 벌을 주었다. 죄를 지었더라도 스스로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는 자는 비록 그 죄가 무거워도 놓아주었으며, 교묘한 말로 변명하려 드는 자는 비록 그 죄가 가벼워도 꼭 벌주었다. 작은 일을 작다 하여 포상하지 않는 일이 없고, 나쁜 짓도 작다 하여 꾸짖지 않는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을 곰곰히 살펴 행하고 사물은 그 근본을 헤아려 다스렸다. 명분을 따르되 실질도 잃지 않았고, 거짓된 것은 아예 입에 담지 않았다. 마침내 나라 안이 모두 두려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했는데, 다스림과 죄 줌이 비록 엄해도 그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씀이 공평하였으며, 경계하는 것과 권하는 것이 뚜렷해서였다. 실로 다스림이 무엇인지를 아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할 만하다. 관중이나 소하에 견줄 만하다.


*손등, 손려, 손화, 손패, 손분

손등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일이 있고, 아주아름다운 덕행을 이루기에 충분 했다. 손려와 손화는 모두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고 엄격하게 자신을 연마 했지만, 어떤 사람은 단명하여 일찍 죽었고, 어떤 사람은 부득이 죽게 되었으니, 애석하구나! 손패는 서자의 신분으로 적자의 지위를 구했고, 손분은 법령과 제도를 준수하지 않아 진실로 위험하고 멸망하는 길을 취했다. 그러나 손분과 그 일족이 주살 된 것은 뜻밖에 날아온 재앙이였다.


*반준, 육개

반준은 공정하고 청렴하며 과단성이 있다. 육개는 충성스럽고 호방하며 질박스럽고 솔직하다. 이 두사람은 모두 절개가 빛났으며 대장부의 기백이 있었다. 육운은 일신을 청결히 하고 사업을 이루었으며, 남쪽 땅에서 명성이 빛났으므로 훌륭한 목이었다고 볼수 있다.


*유봉, 팽양, 요립, 이엄, 유염, 위연, 양의

유봉은 시기하는 입장에 있었으므로 자신을 지키는 대책을 충분히 세우지 못했다. 팽양과 요립은 재능에 따라 발탁 되어 승진 하였고, 이엄은 재간에 의해 영달하였으며, 위연은 용맹함으로써 임명 되었고, 양의는 실무처리 능력이 출중했으며, 유염은 옛날부터 임명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조정에서 존중을 받았다. 그들의 거동을 관찰하고 그들의 언행이 예법에 부함되는지의 여부를 살펴보면, 그들이 초래한 재앙과 허물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정욱, 곽가, 동소, 유엽, 장제, 유방

정욱.곽가.동소.유엽.장제는 재능과 책략,모략, 등에 있어서 세상의 기사이다. 이들은 비록 청아하게 덕행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순유와 다른면이 있었지만, 계책을 짜고도모하는 것은 오히려 순유와 같은 범주이다.유방은 문사가 유려하였고, 손자는 근면하고 삼가하여 두사람 모두 제왕의 중요한 정책을 관장했다. 권세가 그 당시 유명했으나, 아정하고 청량함은 부족 하였고, 조롱과 야유의 평가가 이들의 실제 모습을 매번 능가하였다.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조휴, 조진, 조상, 하후상, 하후현

하후씨와 조씨는 대대로 인척관계가 되었으므로, 하후돈과 하후연,조인,조홍,조휴,조상, 등은 폐부와 같은 친구로 그 당시에 고귀한 관직에 있었으며, 군주의 곁에서 공헌을 세워 모두 공로가 있었다. 조상은 덕이 적은데도, 관직이 높아 이성을 잃고 탐닉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진실로 <대역>에 명시된 대로 도가가 기피하는 바이다. 하후현은 엄격하고 도량이 있어 세간에 이름이 알려졌고, 조상과 조정의 안팎으로 깊숙하게 연결되어 영광스러운 자리가 이와 같았으나, 일찍이 그가 조상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훌륭한 인재를 불러 받아들였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 점을 들어 판단해 본다면, 어찌 비운의 최후를 면할수 있었겠는가!


*최염, 모개, 서혁, 하기, 형옹, 포훈, 사마지

서혁,하기,형옹은 엄격함을 존중 하였고, 그 시대의 명사가 되었다. 모개는 청렴하고 공정했으며 행적이 맑았고,사마지는 충성스럽고 밝았으며 바르지 못한 곳에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동요되지 않은 사람들이였다. 최염은 품격이 높고 가장 우수했으며, 포훈은 바른길로 견지하여 결점이 없었다. 그러나 이 두사람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했으니 애석하구나!<<시경>><대아>에서는 '이미 밝고보 밝아라'를 귀하게 여겼고, <우서>에서는'충직하고 온화하다'는 것을 숭상했는데, 스스로의 재능을 겸비하지 않았다면, 누가 이것을 할수 있으랴!

참고로 최염의 모함으로 노예가 되었다가 나중에 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최염은 세인들에게 가장 비통하고 애석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모개는 최염이 조조에게 죽은것을 불쾌한것을 알게되자 어떤사람이 모함을 하였고,간신히 환계,화흡,등의 사혐만은 면하고 파면당하고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포훈은 조비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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